1930년 독일계 선교사 가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 고항의 봄 >,
< 봉선화 >, < 퐁당퐁당 > 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과 동요를 남긴 작곡가 홍난파가 1935년부터 6년간 거주하면서 말년을 보냈기에 홍난파의 집'이라 부른다.

1900년대 초반 부근 송월동에 독일영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이 일대는 국내 독일인들의 주거지였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쪽 도로를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면 현관으로 이어지는 이집은 지붕이 가파르며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쪽 현관과 이어진 복도의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거실과 침실을 두고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거실의 아래쪽에는 지하실을 두었는데, 이는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던 당시 서양인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층 동쪽에 있던 두 개의 침실은 홍난파기념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